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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상의 여정과 자화상의 시대
-1990년대 후반의 정강자
1997년 3월 김복영 | 미술평론가, 홍익대교수
1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중반에 이르는 십여 년 동안 화가 정강자가 그려온 작품 세계가 어떠한 것인지는 1988년과 1990년에 출간한 자전적 에세이집인 『불꽃 같은 환상의 세계』와 『꿈이여 환상이여 도전이여』에 잘 드러나 있다. 책의 제호처럼 그의 천성은 문자 그대로 불꽃이며 환상과 꿈으로 점철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열렬한 도전의 의지로 채색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적어도 그를 아는 사람이라면 이러한 논평을 서슴없이 용인하리라 믿는다. 작가와 교분을 나눌 경우에도 그러하지만 그 시기마다 그려온 그의 작품들 전부가 또한 뜨거운 빛과 강렬한 힘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찍이 꿈 많던 시절 정강자는 낯선 싱가포르에서 5년간 체류했고 그후부터 지금까지는 세계의 오지들을 두루 방랑했거나 탐색의 여행을 계속해왔다. 1987년 말 중 남미여행을 하고 나서는 "너무나 많은 고생을 해서 다시는 여행을 하지 않으리라 결심하였건만 얼마의 시간이 흐르자 이번엔 나의 꿈을 찾아 아프리카엘 가봐야겠다고 자꾸만 몸살을 앓게 되었다"고 회고하는가 하면 이를 두고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집시 기절을 타고난 천성 때문이 아닐까 하고 실토하기도 하였다. 다행히도 정강자가 자신의 기질을 그림으로 살려내는 데는 이리한 여행벽 속에 감추어진 다음과 같은 상반된 두 개의 힘 덕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불꽃을 머금은 듯한 꿈 내지는 환상을 사랑하는 일과 끊임없이 도전하고 싶은 충동이 바로 그것들이라 할 수 있다. 꿈은 꿈이요 환상은 환상일 뿐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것들은 대개 사람들을 잠들게 하는 법이다. 이에 비해 도전 의욕은 잠을 깨울 뿐만 아니라 삶의 목표를 향해 우리를 긴장시키고 일으켜 세우는 특징이 있다. 그는 바로 이러한 두 개의 상반된 속성을 조화시킴으로써 자신의 작품세계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가 추구해온 세계란 한편으로는 환상과 꿈, 다시 말해서 몽상의 세계를 다루되 이것들에 강렬한 빛을 투사해, 빛을 동반한 몽상을 그려냄으로써 자신의 꿈을 실현시키려는 끊임없는 도전의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2 한마디로 정강자는 그 자신의 삶을 지탱해줄 수 있는 찬란한 몽상을 그려 보이고자 했다. 이러한 몽상들은 몽상 그 자체가 아니라 작가가 겪고 있는 실존들의 자화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말하자면 그에게 있어서 그림이란 몽상을 쫓는 여정의 표현이자 바로 그 자신의 얼굴이요 마음의 세계라 할 수 있다. 그동안 몽상의 여정을 여과해오면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 내기 위해 그는 무척이나 뜨겁게 섭렵하는 자세를 견지해야만 했다. 세계 30여개 국의 오지를 찾아 그곳의 풍물과 군상들, 나아가서는 무속문화에 이르기까지 그것들의 폭과 넓이를 두루 살펴왔다. "가난하고 후진국일수록 그들에겐 토속신앙이 깊다. 내가 보기엔 미개한 원주민들이 잡신들을 위해 만들고 그려 붙여 놓은 모든 것이 모두예술 그 자체로 보였다"고하는 언급은 그가 경험한 것들의 일단을 잘 요약해 보여준다. 세계의 풍물뿐 아니라 우리의 전통문화 유산에 대해서도 그는 결코 소홀히 하지 않았다. 만다라, 탱화, 무속, 단청, 민화는 그에게 많은 영감과 소재를 제공했으며 무엇보다 그의 몽상을 자극하고 거기서 자신의 자화상을 일깨우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하였다.
"내가 민화를 그려내기 위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처음부터 우리의 전통에만 빠져 근시안적 안목으로 보아왔던 것과, 수많은 나라들의 토속문화를 미친듯이 찾아다니다 돌아와 우리의 것을 보는 시각은 절대로 다른 것이었다. 나는 이제야 우리 민족의 삶과 애환이 담긴, 조상들이 남겨준 훌륭한 문화유산을 사랑하게 되었다"는 고백이 이를 잘 말해준다.
3 한마디로 정강자의 근작들, 특히 1990년대 후반의 작품들은 앞서 십 년의 탐색시대를 착실히 여과함으로써 그리고 이를 기조로 해서 이루어졌다. 더 자세히 말해 이전의 모색들을 능가함으로써 좀 더 자신의 존재감에 근접한 세계를 구축하려는 데서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지난 3년, 아니 훨씬 오래전부터 나는 나의 작품 스타일을 바꿔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든지 ”자다가 땀에 흠뻑 젖어 벌떡 일어나 앉아 고심해야 하는 고통을 겪기도 이제는 다반사가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꽤 마음에 드는 작품을 해냈는데도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작품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의문은 금세 풀렸다. 그것은 내가 17년 전 싱가포르에서 살 때 바틱 작업에 몰두했던 데서 비롯되었음을 알았다. 그것들이 바로 과거의 내 작품이었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발버둥쳐봐야 자신의 스타일대로 만들어 가야 된다는 것을 이제사 겨우 깨닫게 되었다." <작업노트>의 실토는 그의 근작들에 대한 가장 최근의 성숙된 의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이번 작품들을 과거의 어떤 경우보다도 자신의 내면세계와 체험 내용에 가까운 빛과 몽상들을 띄우면서 거기서 자신의 실존의 모습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소녀의 초상> <소가 있는 자화상> <용이 있는 자화상> <말이 있는 풍경> <아이들이 떨어진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고 해도>와 같은 100호짜리 작품들은 물론 <삭막한 풍경> <보석이 열리는 나무> <거미> 등 80호 크기의 작품들과 <새를 보는 아이> <뜨개질> <거울을 보는 여자>와 같은 소품들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모두 이러한 계보의 것들로 읽혀진다. 이번 출품작들은 결국 다음 몇 가지로 줄여서 읽혀질 수 있다.
첫째는 특히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목격한 것처럼 황량한 들판에 생명체라곤 일체 보이지 않은 채 인적마저 간데없고 대리석으로 변신한 소녀의 초상을 등장시키는 경우, 둘째는 찬란한 자연의 색깔을 잃어버린 채 공해로 훼손된 삭막한 풍경들이 있는 경우, 셋째는 예컨대 뜨개질을 하다가 불현듯 우주를 유영하는 수많은 행성들을 뒤덮어버린다든가 야자 속 위에 앉아 거미가 뽑아내는 실로 뜨개질을 하는 자신의 환상을 보여주는 경우, 넷째는 비정한 도시의 빌딩 숲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엉켜서 맴도는 경우 등이다.
4 특기할 만한 것은 결코 그가 한 곳에 안주해 있는 기질을 타고나지는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일관된 자세로 자신과 주변사물들을 그려왔을 뿐만 아니라 색조에 있어서 대비의 강렬함이나 인물과 사물들의 뚜렷한 윤곽선을 강조하면서 평면적 이미지보다는 입체적 공간성을 강조하는 등 양식상의 개성을 뚜렷하게 부각시켜왔다는 것이다. 거의 일필휘지하거나 윤무하듯이 그려내던 윤필들이 서서히 진정 기미를 보이면서 사실적 소담함보다는 상정적이고 장식적 요소들, 다시 말해서 비구상적 평면적 선조적 요소들은 물론 자신의 내면심상을 표출한 미묘한 토낼리티를 전면에 부상시키려는 것도 이번 개인전에 선보이는 최근작들의 특정적인 면들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정강자에게 있어서 이번 개인전은 자신의 조용한 변모를 가늠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바로 이 변모야말로 그 자신이 지금까지 섭렵해온 몽상의 여정을 적극적으로 변주하고자 할 뿐만 아니라 거기서 자신의 신정한 실존의 초상을 좀 더 강렬하게 엿보고자 하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주려는 것임에 틀림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