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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강소정
별세하셨다는 이유로 작업에 대한 적절한 비평이 아닌 감정만 가득한 칭찬과 축사를 듣고자 할 그녀가 아니다. 그 진심은 첫 만남에서 일부러 길거리까지 마중 나와 꼿꼿이 서 계신 척 하셨지만 실은 슬쩍 계단에 기댄 채 기다리시던 그 모습에서 묻어났고, 연신 숨을 헐떡이시지만 개의치 않고 즐거운 얼굴로 작품들과 그간의 삶의 궤적을 설명하시던 그 얼굴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쇠약해진 몸은 몸일 뿐, 내 정신까지, 특히 그 결과물인 작품들까지 불쌍하게 바라보지 말라는 그 결연함. 그녀는 그랬다.
그렇게 처음 인사를 드렸고 함께 작품 이야기, 삶의 여정, 작업을 대하는 태도 등 한참 이야기를 나눈 후 돌아오는 길에 걱정이 덜컥 앞섰다. 1세대 행위예술가, 60년대 과감히 누드 퍼포먼스를 행한 진취적 여성 예술가 등으로 주로 알려진 정강자 작가에 대한 미술계 평가는 그 시대에 멈춘 채 그대로 박제가 되어버렸음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작업실에서 본 작품들은 그 이상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50여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했으며, 60-70년대 작업들과는 달리 주로 회화의 형태로 그 결과물들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작품 스타일이 많이 바뀌었지만, 타성에 젖은 생각을 지양하고 끊임없이 실험하고 새로움을 탐닉하는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심지어 투병 중에도 그녀의 작업 시계는 멈추지 않고 돌아갔으니, 영면하시는 순간까지도 그 창작욕을 끊어내지는 못 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널리 알려지고 인정받은 초기 10년 정강자의 행위예술 작품들과 이후 덜 알려진 회화로 점철된 40여년사의 연결고리를 잘 소개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했다.
그러나 당시 오프닝 퍼포먼스로 무엇을 함께 할 것인지에 대한 열띤 토론을 할 정도로 건재했던 그녀가 있었기에 함께 고민하고 천천히 풀어낼 수 있을 것이라 믿었었다. 그러던 중 급작스럽게 작가를 떠나 보내면서, 본격적으로 그 물음과 고민에 다시 한번 진지하게 대면해야만 했다. 그 해답은 시대의 잣대나 이론적 구조에서 좌초되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작가들을 소개하는 데 주력하는 아라리오갤러리가 해오던 호흡 그대로, 이번 정강자 작가와의 첫 전시도 객관적으로 그녀가 해온 작업 전반을 시대별로 모두 펼쳐보는 것이었다. 그런 까닭에 준비하는 입장에서도 쓸데없는 감정이나 미사여구가 들어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니 작가의 작품세계에 대한 해석과 판단은 전시를 보는 이들의 몫이다.
아라리오갤러리 천안과 서울에서 동시에 선보이는 이 전시는 정강자라는 작가가 일군 화업 중 일부인 큰 흐름만을 짚어주는 전시에 다름 아니다. 작가가 남겨놓은 작품들 중 본 전시에서 다루지 못한 작품은 여전히 많이 남아있다. 아라리오갤러리와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함께 멀리 멀리 날아가고 싶다고 하셨던 그녀의 바람대로 이후 작가 정강자의 작품들을 다각도로 조망하는 전시들이나 연구가 지속적으로 연계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