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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여행은 달에 가고 싶다
강소정, 전지영
《마지막 여행은 달에 가고 싶다》는 2017년 7월 별세한 故정강자의 타계 이후 첫 번째 회고전이다. 작고 1년 전부터 계획되어 온 이번 개인전은 삼청동 개관 이후 처음으로 아라리오갤러리 천안과 서울에서 동시에 개최된다. 정강자의 50여년간의 화업을 조망함으로써 격동적이었던 한국의 역사를 관통했던 한 여성 예술가의 열정과 애환의 경로를 되짚어보고자 한다.
정강자는 1942년생으로 홍익대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해 1967년 《청년작가연립전》으로 한국 화단에 등단했다. 강력한 군사정권과 이데올로기가 대립했던 1960-70년대에 ‘신전(新展)’과 ‘제4집단’의 동인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조형적 실험으로써 사회적 발언을 시도했다. 예술가의 신체와 행위를 이용해 현실정치의 요소를 작품의 맥락으로 도입하는 방식은 기성관념을 향한 도전이자 사회체제에 대한 반성의 발로이기도 했다. 하지만, 신체를 활용한 모든 활동에 정부의 제재가 심화하기 시작했던 1970년, 첫 번째 개인전《무체전(無體展)》의 강제철거를 계기로 작품활동을 중단해야만 했고, 가족과 함께 싱가포르로 이주해 10여년간 한국 미술계를 떠나 있었다. 여성의 몸을 당당하게 작품의 중심으로 위치시켜 한 개인으로서의 주체성을 확보하고자 했지만 한계에 부딪쳤던 것이다.
아라리오갤러리는 이번 회고전을 위해 정강자의 작업세계를 총체적으로 조명할 수 있는 작품을 한 자리에 모았다. 천안에서는 대형 회화작품을 포함해 바틱작업, 조각, 소품을 전시하고, 서울에서는 시기별 대표 작품을 선정했다. 작업의 흐름을 탐색하다 보면 평생을 한없이 살아가려 했던 작가의 집념, 그리고 여성이자 예술가로서 짊어지고 가야 했던 고독함을 느껴볼 수 있다. 작가의 일생을 정리하는 이번 전시가 삶과 예술의 의미를 성찰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화실에서 거리로
작가가 대학교를 졸업하고 작품활동에 몰두했던 1960년대 말 한국에서의 상황은 국제사회의 흐름과 직접적인 맥락이 닿아있었다. 국제정치의 부조리와 사회적 불평등에 직접적인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움직임은 1960년대 초중반에 걸쳐 인권운동, 페미니즘 운동, 학생운동으로 확산되었다. 5·16 군사 정변을 겪은 한국 사회는에서는 새마을운동의 희망찬 기운과 군정의 억압적 이데올로기가 교차하고 있었다. 경제적 발전에 대한 기대와 정치적 좌절을 동시에 경험한 이 시대의 젊은 작가들은 내면으로 침잠하기보다는 외부의 현실에 대해 발언하기 위해 거리로 나오기 되었다.
“우리는 젊었고, 문화 정의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것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작가가 회고한 바와 같이 정강자가 속했던 1960년대 말의 미술 집단 ‘신전’과 ‘제4집단’은 폐쇄적인 기성세대에 대한 개념에 저항하고자 했던 최초의 집단적 시도라는 평가를 받는다. 사회와 정치를 적극적으로 비판하지는 않았지만 형식주의 모더니즘 계열의 미술이 지배적이었던 한국에 새로운 목소리를 내고자 했던 실험적 전위미술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참여했던 《청년작가연립전》 개막 첫 날의 가두시위, <한강변의 타살>(1968), <기성문화예술의 장례식>(1970)은 모두 거리에서 진행된 퍼포먼스로, 전통적 예술 공간에 귀속되기를 거부하고자 일상의 공간으로 예술을 침투시킨 작업이다. 이들은 삶과 예술의 경계, 전통과 현대의 위계에 도전하고자 했던 것이다.
거리의 시위를 방불케 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정강자를 포함한 젊은 작가들은 한국 미술의 독립적 가능성과 주체성을 찾겠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이러한 주체의식은 정강자에게 특별한 작업적 근간을 제공했는데 이는 여성의 몸이라는 섹슈얼리티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들에서 목격할 수 있다. 《청년작가연립전》에 출품했던 <키스미>(1967)는 여성의 입술을, 지금은 분실된<STOP>(1968)은 여성의 둔부를, <여인의 샘>(1970)은 여성의 가슴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여성의 나체를 보여주거나, 노출이 금기시 되던 시대에 여성의 신체부위를 극대화한 이 작품들은 한국 사회를 지배했던 보수적인 성별 이데올로기와 성정치의 역학관계를 유희했다. 그가 여성의 몸을 다루는 방식을 통해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칭하지는 않았지만 여성의 몸이 지시하는 함축적 의미와 주체적 정체성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음을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신시대를 겪으며 표면적으로 사회에 대한 비판으로 비춰질 수 있는 미술은 기피대상이 되었고, 군정시기의 문화예술계는 경직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정강자의 작업을 비롯한 한국의 실험적 미술은 정부에 의해 공공연하게 금지된 전위활동으로 낙인 찍혀 아주 최근까지도 미성숙한 미술운동의 하나로 간주되었을 뿐이었다. 정강자는 이러한 실험적 미술의 전개에 참여했던 소수의 여성 예술가 중 하나로 그의 기여도와 영향력은 실제보다 저평가 되기도 했다. 나아가 평생에 걸친 예술작업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작품은 1960년대의 선정적인 ‘해프닝-퍼포먼스-쇼’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어려워 보였다. 정부의 감시로 잠시 활동을 중단했다가 다시 1970년대 중반의 이벤트 퍼포먼스로 활동을 이어갔던 여러 예술가들과는 대조되는 행로였다.
구상에서 추상으로
이번 전시에서는 그간 작가를 둘러싼 편견으로 인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그의 회화작업을 중심으로 작가의 화업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1970년의 《무체전》 이후 비로 10여년간 작업을 중단하였으나 작가의 사회적 문제의식과 주체정신은 1981년 귀국 후 전념했던 회화에서의 실험으로 이어졌다. 특히, 그녀가 지니고 있던 억눌린 욕망과 현실을 작가의 분신(아이콘), 한복치마, 반원과 같이 상징적이고 추상적으로 표출해내는 회화에서는 그의 끊임없는 도전정신을 읽어볼 수 있다. “그 어떤 것에도 얽매이지 않는 무한의 자유공간, 그곳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펼쳐가는 상상들”로 자신을 해방시키고자 했던 것이다.
1980년대부터 작고 직전까지 다양하게 변화해온 그의 스타일에서도 꾸준하게 등장하는 모티프는 작가의 분신인 ‘야누스’와 ‘월계관을 쓴 여인’이다. 그는 이 표상에 대해 “(내면의) 주체하기 힘든 끊임없는 변화의 욕망을 표현한 아이콘(icon)”이라고 설명한다. 작가의 분신들은 작품 속에서 홀로 고독에 빠져 있기도, 어딘가에 수줍게 숨어 있기도, 숲 속을 둥둥 떠다니며 한가로이 여유를 즐기기도 한다. 그들의 모습은 창작을 대면하며 겪었던 고독, 바쁜 하루 속에 꿈꾸는 달콤한 휴식을 대신한다. 이 아이콘들은 현실 속 억압받고 있는 자아를 해방시키는 상징적 기호로서 추상적 조형언어를 발전시키는 모티브가 되었다.
그리고 1987년부터 1991년까지 중남미 8개국, 아프리카 8개국, 서남아시아 6개국, 남태평양의 6개국을 여행하며 오지의 이국적인 풍경을 담아냈으나, 1990년대 후반부터는 한복과 같이 한국의 전통적인 형상에 집중하게 된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것이라고 했던 한복치마는 어머니가 된 작가 자신과, 또 그의 어머니처럼 늙어가는 여성으로서의 자연스러운 삶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표상이었다. 오래도록 여성의 가슴을 매었던 한복치마는 그의 작품에서 끈이 풀린채 하늘을 훨훨 날아다니고, 또 산처럼 쌓여 높고 커다란 기념비를 만들기도 한다. “한복은 수천 년을 남성우월주의의 지배에서 억압받고 유린당해온 우리 여인들의 깃발이요, 자유를 향해 맘껏 나는 한풀이, 억압받고 차별받고 부당한 대우만 받고 살아도 말없이 견디고 버텨온 우리 여인네의 한을 나타낸다. 치마를 묶은 끈이, 날고 잘려나간 끈이 새가 되고 구름이 되어 떠돈다. 내 작품에 우리 여인네의 삶과 한이 고스란히 옮겨지곤 하는 것이다”라고 했던 정강자는 한복치마를 통해 여성의 삶을 투영한다.
이렇게 구상적인 것에 대한 관심을 추상적인 이미지와 화면으로 발전시키는 데에 기폭제가 된 것은 원형(圓形)이다. 그는 매체나 주제에 얽매이지 않는 작업의 방식을 찾고자 했다. 전통적 미술의 매체와 퍼포먼스, 여성과 남성, 억압과 해방, 전통과 현대와 같은 기존의 이분법적 질서를 극복하고자 했던 것이다. 그가 발견한 해답인 원은 그의 작품 안에서 크게 확대되어 역동적인 동작을 만들어내기도, 작게 분절되어 관념적인 화면을 구성하기도 한다. 캔버스를 가득 채우는 원의 조각들에는 작은 원자에서부터 서서히 팽창하여 지금의 우주를 이루었다는 빅뱅이론에 공감했던 작가의 생각이 녹아있다. 작가 개인에서 인간에 대한 관심으로, 나아가 우주적 관심으로 확장되어 가는 과정에 서 나온 조형적 실험인 것이다.
전시의 제목 <마지막 여행은 달에 가고 싶다>는 작가가 갑작스럽게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투병 중에 그린 2015년 작품명을 가져온 것이다. 그는 캔버스 앞에 서기 위해 육체의 고통을 인고하고 병마와 투쟁하며 삶과 죽음에 대해 성찰했다. 눈앞에 놓인 표면적인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창조적 열망을 실현해내기 위한 노력을 지속해 온 정강자의 주체적 태도가 상징적으로 나타난다. 샘솟는 예술혼을 담아낸 그의 작업을 한데 모아 조명하는 이번 회고전은 한 시대를 증언할 뿐만 아니라 인간의 희노애락, 우리의 육체를 초월하게 하는 것들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가늠하는 기회가 될 것이다.